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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PHN : Research in Community and Public Health Nur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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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Res Community Public Health Nurs > Volume 36(3); 2025 >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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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보건간호 실무지침서 “보건간호지침” 연구: 한국 보건간호 실무의 기초를 세운 실천적 매뉴얼
정준호1orcid, 이경희2orcid
Korea’s First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 A Foundation for Public Health Nursing Practice in Korea
Junho Jung1orcid, Kyunghee Yi2orcid
Research in Community and Public Health Nursing 2025;36(3):245-256.
DOI: https://doi.org/10.12799/rcphn.2025.01102
Published online: September 30, 2025

1인하대학교 인하융합연구원 연구중점교수

2수원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

1Research Professor, INSTAR, Inha University, Incheon, Korea

2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Nursing, The University of Suwon, Hwaseong, Korea

Corresponding author: Kyunghee Yi Department of Nursing, The University of Suwon, 17 Wauan-gil, Bongdam-eup, Hwaseong-si, Gyeonggi-do, 18323, Korea Tel: +82-31-229-8828, Fax: +82-31-229-8316, E-mail: khyi@suwon.ac.kr
• Received: April 28, 2025   • Revised: June 6, 2025   • Accepted: July 2, 2025

© 2025 Korean Academy of Community Health Nursing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Derivs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d/4.0) which allows readers to disseminate and reuse the article, as well as share and reuse the scientific material. It does not permit the creation of derivative works without specific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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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rpose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functions and roles of public health nursing, which played a key role in public health center activities during the formative years of the organizations in Korea. It does so by analyzing the structure and content of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 the first of its kind published in Korea, as well as its authors’ records—particularly the U.S. nurse advisors.
  • Methods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 was investigated from the cover to the appendix with other related records from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 Results
    The manual was published in response to the expansion of health centers and the increasing need for standardized practice for public health nurses. It includes theoretical and practical guidelines on maternal and child health, communicable disease control, school health, health education, etc. as well as the qualifications of public health nurses. The manual was influenced by U.S. nursing education and international public health manuals.
  • Conclusion
    The manual played a critical role in shaping early public health nursing practices in Korea by providing essential knowledge and standardizing public health services. It reflected Korea’s evolving public health system, heavily influenced by U.S. aid and technical assistance. Despite its significance, challenges such as a shortage of trained public health nurses and an underdeveloped administrative structure remained unresolved.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미군정기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식 보건의료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지역사회에서 의료기관의 역할이 국제 원조를 통해 보다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국가적으로 공중보건(public health)의 개념이 도입되고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보건 활동이 강조되었다. 보건간호(public health nursing)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보건소(health center)를 중심으로 해방된 국가의 공중보건을 실현시키기 위한 주요한 매개체로 기능하였다[1].
우리나라 보건소는 1945년 서울시 중구에 설치된 모범보건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보건소를 설치, 확대하였고 ‘구호’와 ‘재건’이라는 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급박한 요구에 대응하며 미국식의 새로운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급속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전국적으로 보건소의 분포는 1959년 8월 말을 기준으로 50개소에 불과하였고[2], 보건소 인력은 의사 1명과 간호원 2명, 위생기사 1명, 그리고 행정직 1명씩 배치되는 데 그쳤다. 한편 1959년은 전국 182개 보건소 설치를 위한 3개년 계획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이렇듯 급격히 확대되어 가던 각 시군의 보건소에 배치된 일선 간호사들은 전염병 관리, 결핵관리, 모자보건, 위생, 영양 등 보건소가 담당해야 하는 다양한 공중보건 업무를 충분한 사전 교육과 훈련 없이 실질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국내 실정에 맞는 보건간호 교육을 받거나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간호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보건간호 교재는 부재한 상태였다. 이에 해방 직후부터 여러 간호 원조기구들은 해외의 간호교과서를 주문하여 대한간호협회가 이를 번역, 출판함으로써 간호교육에 활용하였다[3]. 그에 반해 <보건간호지침>은 번역서가 아닌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건간호 전문가들이 직접 집필, 출판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보건간호에 관한 실무지침서(manual)로서는 1959년에 출판된 <보건간호지침>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본 지침서 이전에 국문으로 출판된 보건간호 도서로는 1933년 조선간호부회에서 출판된 <공중위생간호학>이 있다. 이 책의 집필자는 태화여자관에서 방문간호사업을 한 미국인 선교간호사 로젠버거(E. Rosenberger)이며 보건간호사업을 시작한 이래 최초의 보건간호학 교과서로 평가받는다[4]. 그리고 1967년 출판된 이금전의 <보건간호학> 서문에 따르면[5], 1949년 대한간호협회가 번역서로서 <보건간호학>을 발행하였다고 언급되었으나 이 출판본이 현재 존재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출판된 보건간호 관련 도서가 바로 1959년에 보건사회부 보건과에서 출판한 <보건간호지침>이다.
<보건간호지침>은 정부 주도로 편찬된 문서로서 공적 성격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집필 당시 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건간호원이 알아야 할 지식과 담당해야 하는 보건간호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실무 지침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본 지침의 구성과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은 지침이 출판되었던 1959년 전후 보건간호를 포함한 공중보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당시 한국의 보건간호 실무가 어떠한 사회적 요구를 마주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를 지침서와 연결함으로써 우리나라 초기 보건간호 사업의 전개 양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건간호원이 주요하게 담당했던 역할을 탐색하여 당시 한국의 보건간호가 가진 특성과 한계를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설계
본 연구는 1959년에 출판된 <보건간호지침> 및 미국 원조기구 및 간호자문관의 보고서 등을 일차사료로 하여 초기 보건간호의 활동과 역할을 연구하기 위하여 사적 연구방법을 적용한 역사연구이다.
분석대상
1959년 보건사회부에서 출판된 <보건간호지침>을 주 사료 분석대상으로 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이하 NARA)에 보관되어 있는 주한미국경제협조처(United States Operating Mission to Korea, 이하 USOM) 간호자문관들이 기록한 활동보고서 및 당시의 한국 보건간호 상황을 기록한 문서들을 부 사료로 사용하였다.
자료수집 및 분석방법
본 연구의 일차사료인 <보건간호지침>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학술정보처로부터 사본을 구득하였다. 본 지침은 다수의 집필자가 참여하였기에 각 집필자의 활동 내용을 담은 논문과 저술 등도 함께 조사하였다. 특히 지침의 집필 및 출판을 주도하였던 미국 간호자문관들을 중심으로 한국 보건간호 활동 내용, 진행상황과 성과를 상세하게 기록한 자료는 미국 NARA에서 검색하여 참고하였다. 그 외 지침 출판 전후의 “보건소법” 등 관련 법 규정은 국가기록원 및 국가법령센터 등에서 검색하여 분석에 참고하였다.
<보건간호지침> 출판 배경
한국전쟁 후 혼란 속 한국 정부는 1956년 12월 13일 “보건소법”(법률 제406호) 제정과 함께 전국적으로 보건소를 설치, 확대하여 “한국이 처한 특별한 상황”에 맞게 보건소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였다[6]. “보건소법”에 명시된 보건소 주요 업무는 ‘전염병과 기타 질병의 예방진료 및 그 만연방지, 모자보건, 학교보건, 환경위생과 산업보건, 보건통계, 보건사상의 보급, 기타 지방의 공중보건 향상 업무’이었다(제2조) [7]. 보건소는 “지역의 공중보건 행정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었는데, 보건소장에게 위임된 행정업무들은 주로 불법 의료행위의 억제, 위생시설에서의 불법 조제, 조리사의 신체검진 등이었다[6].
미국은 1956~62년 사이 한국에 총 11명의 간호자문관(Nurse advisors)을 파견하였는데, 그중 보건사회부의 간호행정조직과 보건간호사업에 관여하는 간호자문관이 5명, 간호교육을 위해 파견된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와 인디애나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8]. 미국 간호자문관들 중에는 보건간호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미군정기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의 보건사업을 담당할 보건간호원의 훈련과 지도에 공을 들여 사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각 보건소에 배치된 이들이 실무에서 활용할만한 보건간호 지침이나 교재는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보건간호지침>은 서문에서 이미 많은 보건간호원들이 활용되고 있으나 “이들의 사업과 활동에 대한 지침이 될만한 서적이 없”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며, 이들의 “활동기준이 될만한 참고 지도서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그 목적을 밝혔다(지침 서문 1쪽). 미국 간호자문관 로바 켈로그(Robah Kellogg)가 작성한 월별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사회부 보건과(the public health section)가 지침의 발간계획을 세웠고, 미국 간호자문관들이 손창환 보건사회부 장관이 위임한 위원회가 주최한 기획회의에 참석하였다”고 보고하였다[9]. 그리고 “지침 출판을 위해 위원회의 각 위원들이 파트를 나누어 맡아 1958년 3월 6일까지 완성해오기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57~1960년 한국의 보건사업>에 정리된 켈로그의 1958년 4월 18일 보고서에는 한국 전역에서 공중보건 업무를 하면서 매우 유용한 과목에 대해 설명해 놓은 몇 개의 소책자들이 보사부 직원들에 의해서 준비되어 있다고 밝힘으로써[10], 이 지침이 출판되기 전에는 간이 소책자의 형태로 발간하여 활용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건사회부는 1957년 보건간호원이 활용할 수 있는 11쪽 분량의 <임산부 및 영유아보건지도요령>을 발간한 바 있으며, 보건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보건소 및 보건간호원의 활동 영역을 밝힌 『여러분의 보건소 안내』와 같은 홍보물을 1958년 4월 유엔군사령부 산하 경제조정관실(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OEC)과 함께 발간하기도 했다[11] (Figure 1). 이 자료들에 따르면 보건소 간호사업은 어머니와 애기 간호, 가정에서 병자 간호, 가정 방문, 보건 교육, 가정 분만, 애기병자 어머니에게 영양지도, 학교 보건으로 명시되었다[12].
1950년대 보건소와 보건간호원 제도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당시 간호인력을 제3종 보건원·조산원·간호원’(제2조)으로 세분하여 보건간호 인력, 즉 보건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두었다[13]. 하지만 1962년 3월 이 법을 “의료법”으로 전부 개정하면서 의료업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원 및 간호원’임을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보건원 제도를 폐지하였다[14]. 1952년 1월에 제정되었던 “보건원·조산원·간호원자격시험 규정”은 존속하다가, 1959년 보건사회부령 제41호 제6조에 ‘보건원자격시험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조산원으로서 보건사회부장관이 지정하는 시설에서 공중보건에 관하여 6개월이상 실지 수련을 받은 자라야 한다’고 1차 개정하였다. 그 후 이 법은 1961년 2차 개정까지 보건원 자격시험 조항을 유지하였으나 규정 자체가 1969년 7월에 최종 폐지되었다.
1959년 보건사회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2], 간호인력 중 면허 등록은 종별로 간호원 4,043명, 조산원 3,718명이었고 보건원은 2명뿐이었다. 즉 당시 한국의 전체 간호 인력 중 단 2명만이 자신을 면허로서 인정되는 전문적인 보건간호원인 ‘보건원’으로 정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2명의 보건원은 1959년 신규 면허 발급자로, 국민의료법이 제정된 1951년부터 1959년까지 보건원 면허 소지자는 없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1950년대 보건소망의 전국적 확대에 따라 보건간호 직무 교육을 받았거나, 실질적으로 보건소에서 보건간호 업무를 수행하는 ‘보건간호원’의 인력은 이보다 많았다. 같은 국정감사자료에서도 1959년 한 해에만 4회에 걸쳐 66명의 보건간호원 훈련이 실시되었다고 기록했다[2].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본 논문에서는 당시 활동하고 있었던 보건간호 인력을 보건간호원으로 지칭하고자 하며, 이는 보건소를 기반으로 여러 보건활동을 수행하는 간호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보건간호지침>의 용어를 직접 인용할 때에나,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정의된 특수한 맥락을 언급할 때에는 보건원이라는 용어를 유지하였다.
보건간호원의 주요 근무지인 보건소는 1959년 8월을 기준으로 전국에 50개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말에는 66개소로 늘어났다. 정부는 1959~1961년 3개년 계획으로 182개소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15], 예산 부족으로 원래의 계획대로 확대할 수 없었다. 보건소 인력은 1951년 내무부 장관이 보건사회부 장관과 협력하여 영구 직책으로 5인 체제, 즉 의사 1명, 보건원 2명, 위생관 1명, 행정사환 1명 총 5명으로 구성하였다[16]. 1959년 12월 기준으로 설치가 완료된 50여 곳의 보건소에는 총 130명의 간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16].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기 보건원 면허자격을 등록한 인력은 2명뿐이었다.
그에 반해 보건소의 활동은 빠르게 늘어가고 있어, 1958년과 1959년 사이 건강 및 영양 상담은 196,443건에서 281,661건으로, 가정방문은 43,766건에서 75,664건으로, 보건교육은 영화 상영이 201회에서 771회로, 학교방문이 658회에서 2,527회로 늘어났다[17]. 이러한 상담, 가정방문, 보건교육은 보건간호원의 핵심 업무들이었다. 이는 당시 보건소, 특히 배치 보건간호원이 담당해야 할 주요 사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데에 반해, 충분한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국제협조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ICA)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간호교육 원조 유학생 18명 중 15명을 보건간호에 배치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으나, 이들의 유학기간은 평균 12개월로 보건간호 인력 양성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18]. 이는 1959년 본격적인 보건소망 확대에 발맞추어, 보건소라는 환경에 처음 배치된 간호인력이 적절한 공중보건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며 실무적인 지침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보건간호지침의 모습과 구성, 집필자 소개
보건간호지침은 겉표지 1쪽, 속표지 1쪽, 서문 2쪽, 목차 6쪽, 본문 155쪽, 부록 13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는 “보건간호지침”이라는 한글 제목 하단에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이라는 영문이 적혀 있고, 맨 하단에는 지침을 출판한 ‘보건사회부’가 영문인 “Ministry of Health & Social Affairs”와 함께 적혀 있다. 표지를 제외한 모든 내용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서문은 보건사회부 방역국 보건과에서 작성된 것으로 한자 위주로 작성되었지만, 그에 비해 본문은 한글 위주로 작성되었고 일부 용어에 대해서만 한자를 병기하였다. 본문의 영문은 주로 질병명 또는 검사명에 병기되었으며, 특히 제4편 전염병 간호 편에서 ‘보건간호원이 알어야할 급성전염병’이라는 제목의 한글 표 다음에 같은 내용의 ‘Acute Communicable diseases For which care is frequently given by P.H.Nurse’라고 영문으로 적힌 표가 연이어 제시되어 있다(지침 본문 110쪽).
본문은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보건원의 사명’을 시작으로, 제2편 ‘성병사업’, 제3편 ‘결핵사업’, 제4편 ‘전염병 간호’, 제5편 ‘학교보건’, 제6편 ‘보건교육’, 제7편 ‘기록과 보고’ 순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제1편 ‘보건원의 사명’은 전체 지침 중 70쪽으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제1편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건원의 사명과는 다소 별개의 주제인 “제6장 모성보건지도”와 “제7장 유유아(영유아) 보건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제1편을 맡은 집필자가 보건원의 사명 외에 모성보건, 그리고 영유아보건 편까지 집필한 후 한 데 묶어서 편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침 전체 구성에서 모성보건지도와 영유아 보건지도를 별개의 주제로 분리하여 본다면, 보건원의 사명 이외 세부적으로 보건간호지침의 순서상 가장 먼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 모성보건과 유유아 보건이 특히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당시 높은 영유아 사망률이 주요한 보건 문제였던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1948년 전체 사망자 186,794명 중 80,621명이 5세 미만 아동이었으며, 1950년 전쟁 중 한국의 영아사망률은 1,000명 당 178.7명에 달했다. 1954년에야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져 1959년 시점에는 82.9명이었다[17]. 한편으로는 모성 건강과 출산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1960년에 USOM의 간호 자문관이었던 켈로그가 쓴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보건소마다 산전관리와 가정분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농촌 보건소에 배치된 간호사들에게 산과 실습과 훈련이 시급히 요청된다” [19]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지침의 말미 ‘부록’에는 보건소법 등 관련 법 등을 수록하였다.
전체적인 구성은, 1956년에 제정된 보건소법에 명시된 보건소 업무와 비교해보면 주요 업무들이 본 지침의 목차에 포함되어 있으나, 동시에 그 순서가 다르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보건소법에서는 보건소에서 관장해야 할 업무의 순서를 전염병 및 기타 질병의 진료 및 예방, 모자보건, 학교보건, 환경위생 및 산업보건, 보건통계, 보건교육으로 나열했다[7]. 이러한 차이는 전체 보건소 관장 업무 중 보건간호원에게 할당된 업무와 그 우선 순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본 지침에는 산업보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1974년 대한간호협회 출판부가 발행한 <보건간호 실무지침>[20]에서도 산업보건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당시 대한간호협회 회장이었던 전산초는 <보건간호 실무지침>의 머리말에 “보건소, 학교보건, 산업장에서 지역사회 간호의 실무를 담당한 전문직 간호원에게 필요불가결한 참고자료가 되리라”고 기대하였지만 실제 해당 지침에 산업간호(보건) 내용을 수록하지는 않았다.
본 지침 서문의 마지막에는 보건사회부 방역국 보건과가 본 지침을 제작하였다고 밝혔다. 당시 보건사회부 산하에는 의정국, 방역국, 약정국, 원호국, 부녀국 그리고 노동국 등 6개국이 있었다. 그 중 방역국에는 보건과, 위생과, 그리고 방역과를 두었다. 본 지침을 출판한 방역국 보건과는 “보건교육, 모자보건, 학교보건, 산업보건 및 국내 타과 주관에 속하지 않는 사항을 분장”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21]. 참고로, 당시 보건원, 조산원, 간호원 등 “제3종 의료업자의 자격, 시험, 면허, 등록과 조산 및 간호사업에 관한 사항을 분장”하는 간호사업과는 의정국 산하에 있었다.
서문에는 지침의 집필자를 소개하고 있다. 제1편 보건원의 사명을 집필한 이는 손경춘이다. 그는 1941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보건간호원인 보건부 양성을 주도했던 성누가병원(St. Luke hospital)에서 수련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는 이금전과 함께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 보건간호과에서 보건간호강습회를 담당하였고[22], 1948~49년 미국 록펠러재단 장학금을 받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보건간호학 석사(MA)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이화여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제3편 결핵사업과 제7편 기록과 보고는 보건사회부 방역국 보건과의 이표희가 맡았다. 그는 대전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간호연구원을 거쳐 1961년 인도 켈커타에 있는 인도공중보건원에서 유학하였다. 그는 국립보건원 보건간호과, 보건사회부 간호사업과 보건간호계장 등 보건간호사업에서 실무적으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969년 4월에 도미(渡美)하였다[23].
제4편 전염병 간호의 집필자는 당시 한국에 주둔해 있던 USOM의 보건위생국 간호자문관이었던 로바 켈로그라고 소개하였다. 켈로그는 1958년 2월부터 1960년 5월까지 3년 간 간호자문관으로 한국에서 활동하였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보건간호사였던 그의 한국에서의 업무는 보건간호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공중보건 전반에 걸쳐 있는데, 미국 같은 학교에서 공중보건학을 수학한 의사 김명호, 그리고 한국인 간호자문관 보조원(Assistant nurse advisor) 이인애 등과 더불어 ‘보건소 훈련팀(health center training team)’을 꾸려 전국 각지의 시도 행정기관 및 병원, 보건소 등을 시찰하고 방문 지역의 의료인, 보건소 직원을 면담하고 그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보건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10].
제2편 성병사업의 집필자는 지침 서문에서 언급이 빠졌으나, 켈로그가 작성한 1959년 6월 20일 활동보고서에 미국 ‘간호자문관들이 결핵과 성병 간호에 대한 장(chapter)을 완성하여 보건사회부에 넘겼다’[9] 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켈로그를 포함한 미국 간호자문관들이 공동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제5편 학교보건과 제6편 보건교육은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간호과장인 이금전이 집필하였다. 이금전은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와 세브란스 병원 산파간호부양성소를 졸업하였고 간호부 면허와 산파 면허를 모두 취득하였다. 1929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공중위생학과에서 보건간호 과정을 수료한 뒤 귀국하여 서울에 있는 태화여자관에서 보건간호사업을 수행하고 있던 선교간호사 로젠버거와 함께 보건간호사업을 확대, 발전시켰다. 미군정 초기에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 보건간호과장을 역임하였고 1948~49년에는 미국 하와이한인회 초청으로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가서 보건간호 및 병원 간호관리를 연구한 뒤, 귀국 후에는 대한간호협회장, 중앙간호연구원장, 그리고 국립중앙의료원 간호과장을 역임하는 등 보건간호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간호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왕성히 활동하였다[24]. 특히 그의 직전 직위가 보건간호 지도자 양성을 담당한 중앙간호연구원의 원장이었다는 점은, 그가 보건간호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임을 시사한다. 본 지침의 이와 같은 집필진 배치는 원조 당국의 이해를 반영하여 미국식 보건의 이념과 실천을 반영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보건간호지침>의 집필자 중 한국에서 가장 오랜 보건간호 경력을 가진 이는 이금전이었으나, 지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보건원의 사명과 모자보건 부분을 집필한 사람은 해방 후 미국 유학을 통해 미국식 의학과 보건으로 완전히 재교육된 손경춘이었다.
보건간호지침의 내용
제1편 ‘보건원의 사명’편은 총 7장으로 나뉜다. 제1장 ‘어떠한 보건원이 요구되나’ 편은 보건간호원의 자격에 관한 것으로, 보건간호원을 유자격 간호원 즉 ‘간호학교를 졸업한 간호원’에 한하여 보건간호원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는 간호원은 소관장관이 지정한 학교를 졸업하거나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만이 면허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제14조) [13]. 그러나 간호원 자격시험은 중앙정부가 아닌, 주무부 장관의 지정에 따라 지방행정의 장이 시행하였고, 1949년 이후 부활된 검정고시제도로 질 낮은 간호원 배출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25].
그리고 당시 국제적으로 보건간호는 ‘간호, 공중보건 그리고 사회부조(social assistance)의 요소를 결합한 형태로서 건강증진, 사회적, 물리적 환경개선, 재활, 질병 및 장애예방을 위한 전체 공중보건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특수한 간호분야’로 정의되었다[26]. 따라서 보건간호원은 간호원 면허자격 이외에도 예방의학, 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학문적 소양과, 지도력, 친절성, 근면성, 창의성, 협조성, 조직성 등을 갖출 것을 요구받았다. <보건간호지침>에서도 보건원들에게 단순히 간호 면허를 넘어 “사회학, 교육학, 심리학”을 습득할 것을 요구했다(지침 본문 1쪽).
다음으로 ‘보건원이 알아야 할 원칙’으로, 보건사업 실시 전에 지역의 요구를 먼저 파악할 것, 보건사업 시 지역의 단체와 이해와 협력, 지지를 받을 것, 정당이나 종파, 인종에 따른 차별을 두지 말 것, 기록 보존에 방심하지 말 것, 개인 및 집단의 위생교육, 직업도덕, 근무시간 엄수, 자기 수양 등을 강조하였다. 기록 부분은 본 지침의 제7편에 별도로 제시했을 만큼 보건간호원의 기록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간호자문관들은 실제 보건소 시찰 시 보건소마다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지적하였다[10].
보건소 (보건)간호원이 수행해야 할 업무로 지역사회 사업계획, 보건소 관리, 기록과 보고, 지역 내의 타기관과의 연락 등 대외적 활동, 도표작성, 가정방문, 보건지도, 모성보건지도, 유유아 보건지도 등의 순으로 열거하였다. 지역사회 사업계획은 년차 계획부터 일 계획에 이르기까지 지역 통계분석을 통하여 사업계획의 타당성을 획득하고, 지역의 협조성과 사업 방법의 적합성을 평가한 후 현실성 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다.
보건소 관리는 보건간호원의 보건소 내 주요 업무로 보건소의 청결과 정돈, 각 실별 물품준비 및 관리 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보건소에 방문하는 내소자를 대상으로 한 전염병 관리 역시 중요하여, 전염병 환자와 일반 건강인이 접촉하지 않도록 동선을 관리하여 전염병 전파를 차단하도록 하고, 위생과 청결을 통해 전염병을 통제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보건소는 “위생사업의 전당”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천정의 거미줄, 벽보에 케케묵은 먼지, 더러운 유리창, 마루바닥의 쓰레기, 특히 변소 등은 청결을 보존하도록” 하며, 보건간호원이 지휘감독하거나 담당인력이 부족하면 직접 청결 활동을 실시하여 위생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지침 본문 3-6쪽).
보건소 밖에서는 관할 구역(부락)의 보건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연간 사업통계표”, “지방보건실태표” 등의 도표를 작성하여 보건소에 게시할 뿐만 아니라 주민에게도 배부하도록 하였다. 보건간호원의 대외적인 활동은 지역 내 관공서, 동회나 면사무소, 지서 또는 의료기관, 교회, 부인회, 4H 클럽, 반장회나 리장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긴밀한 관계를 맺고 협력하도록 하였다.
가정방문은 지침의 각 편마다 별도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보건간호원의 핵심적인 업무로 다루었다. “가정방문의 이점”에서는 대상자의 주거환경, 경제수준, 가족구성 등을 직접 관찰하고 사정할 수 있어 가족간호 및 보건교육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으며, 가정방문 시의 준비사항과 유의사항, 방문가방에 포함될 물품, 방문 중 유의할 점, 방문 후의 처리절차에 이르기까지 가정방문에 대한 지침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가정방문 시 보건간호원은 “결핵환자가 있는 가정, 치료를 중단한 어린이, 갓 출산한 여성, 사망한 자나 병자가 있는 가정, 3일 이상 결석한 아동의 가정”을 방문의 높은 우선순위에 두도록 했다(Figure 2). 가정방문의 강조는 보건행정 체계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보건소가 지역사회의 보건의료 요구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통로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제4장 ‘보건지도’는 개인, 가족, 국가의 건강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개인 또는 집단을 대상으로 교육과 지도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제5장은 보건교육 방법으로 언어(회화, 강의, 좌담회, 방송 등), 시각(영화, 포스터, 전시물, 도표, 인쇄물 등), 실질(시범 등)을 활용할 수 있음을 소개하였다. 국민의료법에서 보건원의 임무를 보건지도와 요양보도로 지정했던 것처럼, 보건간호원을 통한 교육의 확대는 보건 사업의 기층적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제6장은 모성보건지도에 관한 사항으로 임부의 건강관리와 출산관리, 그리고 학령전기 아동에 대한 건강지식과 관리 시 필요한 지식을 기술하였다. 출산기 여성에게 임신, 분만, 산욕 등에 대한 지도, 개인위생 및 가족 위생, 임부진찰(산전관리), 유산∙조산∙사산에 대한 지도, 임신 중 질병, 임신 시기별 관리, 가정분만 지도, 산욕기 지도, 수태조절 등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이론적 지식을 담고 있다. 그간 모성보건과 관련한 보건간호원의 업무는 주로 분만개조에 치중되어 있어 임신기와 산욕기 여성 건강에 대한 이론적 지식은 부족하였다[25]. 본 지침은 그간의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고자, 임신과 출산에 국한되지 않고 모성 건강 전반에 필요한 내용을 포함시켜, 보건간호원이 실천의 근거가 되는 이론적 기반을 보다 충실히 마련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보건간호원의 핵심 역할은 임부를 발굴하는 것이었으며, 가정방문과 자모회 활동, 무상 물품 보급 등을 통해 임산부가 자발적으로 보건소를 찾도록 유도하고 그 현황을 파악하였다.
제7장 유유아 보건지도는 주로 건강상담과 가정방문 집단교육을 다루었는데, 아동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건강문제를 소개하고 발육 및 영양과 관련된 지식, 특히 월령별 모유수유 및 영양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하였고, 마지막으로 아동 가정방문을 추가하였다.
한편 제1편 보건원의 사명을 통해 당시 ‘보건원’에 대한 보건간호계 내부의 인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의 제목은 보건원을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 기술에서는 별도 보건원 면허 소지자가 아닌 보건소에 배치된 간호원, 즉 보건간호원 전반을 보건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보건간호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에서 보이듯, 임상 영역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지향하는 대민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보건소 내 보건간호원의 역할에서 우선적으로 보건소 내부의 청결 관리와 외래 업무 준비가 부여된 점에서 드러나듯, 보건원은 보건소 내 임상 간호 업무도 그대로 담당할 것을 요구받았다. 집필자 모두가 다년간의 보건간호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기적인 지역 방문을 통해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모순적인 요구들이 당시 보건간호원들이 마주하고 있던 현실이었음을 나타낸다.
제2편은 성병사업에 대한 내용이다. 매독(Syphilis), 임질(Gonorrhea)과 같은 성병은 제3종 법정 전염병[27]으로서, 보건간호원은 성병 관리에 있어 “환자의 발견, 환자의 이해력과 지도, 매독을 가진 임부의 관리, 선천성 매독 예방, 환자에 대한 과학적 간호, 그리고 건강지도”를 직책으로 두었다. 환자와 가족과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성병의 특성과 치료, 개인위생, 감염경로, 조기 검진 및 예방에 대해 교육하고, 타인에게 전염되지 않게 지도하도록 하였다. 특히 성병의 진단은 “환자나 그의 가족의 위신이나 명성에 대하여 커다란 충격”을 주기 때문에 “성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마음 속에 간직해 두고 언제나 환자의 체면을 보호”해야 함을 강조하였다(지침 본문 74-75쪽).
제3편은 결핵사업에 관한 내용이다. 1955년 한국의 공중보건 상황에 대한 한미재단(American Korean Foundation, AKF) 보고서에서 결핵을 ‘한국의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전염성 질병 문제’라고 단언할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1950년 기준으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9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28]. 보건소는 일선에서 결핵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주요 기관 중 하나로[29], 보건간호원은 BCG 예방접종과 결핵환자를 대상으로 한 보건지도를 병행하여, 특히 결핵 집단검진, 접촉자의 검진, 의심환자에 대한 추궁검진, 튜베르클린 반응검사에 이르기까지 결핵환자를 조기발견하는 과정에 집중하였다. 1955년부터 보건부는 결핵대책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결핵환자 10만 등록사업”을 시행했다[29]. 이처럼 초기 환자 파악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직접 지역사회와 접촉하는 보건간호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본 지침에서도 보건간호원이 담당해야 할 결핵사업은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특히 결핵환자의 가정방문은 “결핵예방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보건원의 임무”라고 보았다(지침 본문 92쪽). 우선방문 대상자는 보건소에 불규칙하게 내소하는 환자, 임부 결핵환자, 그 외 속히 방문이 필요한 환자이고, 가정방문시 환자가 머무는 장소를 가족과 격리시키고 채광과 환기가 잘되는 곳으로 하며 환자로부터 분비물 즉 객담과 소유물을 위생적으로 처리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결핵환자를 위한 격리병상은 충분치 못했기에[28], 많은 결핵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 폐결핵 환자가 복용하는 스트렙트 마이신, 아이소니아 지드, 파스(P.A.S)등 약물 기전과 복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제4편 전염병 간호는 미국 간호자문관인 로바 켈로그가 집필하였다. 전염병 간호는, 1956년 제정된 “보건소법”에 보건소 사업 중 “전염병 기타 질병의 예방진료 및 그 만연방지에 관한 사항”을 가장 먼저 제시할 만큼[7] 보건소 제1의 업무로 중요시되었다[15]. 보건간호원의 역할은 천연두, 지프테리아(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D.P.T), 장질부사(장티푸스) 등 급성 전염병의 예방주사, 환자 접촉자의 조기발견과 감독, 병원체의 전염경로와 격리방법 교육, 역학조사 등이었다. 특히 “전염병에 대한 예방주사가 특별히 필요”하며 보건간호원은 의사와 함께 영유아와 학령전 아동에 대한 예방주사의 완벽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전염병 환자 간호로서 격리를 중요시하였는데, 전염병 환자방에 들어가기 전의 과정, 들어간 후의 절차, 검사물 수집 절차, 도말하는 방법, 최후의 총소독 등의 구체적 절차를 설명하여 “가능한 한 빨리 환자로 하여금 회복케하며 동시에 간호원이나 그 가족에게 그 전염병을 전파시키지 않도록” 소독을 강조하였다. 전염병 간호의 마지막 부분에는 “보건간호원이 알어야할 급성전염병”으로 지정된 법정전염병들 뿐만 아니라 수두와 감기 등 주요 전염병들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주요 전염병에 대한 예방, 격리, 치료까지 광범위한 지식을 제공한 것은 보건간호원들이 전염병 관리 전반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제5편 ‘학교보건’에서, 학교보건은 보건소 보건간호원이 관할해야 하는 지역사회 보건사업의 주요한 일부분으로 간주되었다[5]. 학교보건의 주요 활동은 위생적 환경 준비(즉, 학교 환경 관리), 학생건강의 정확한 평가와 대책(학생 신체검진), 학생질병과 부상에 관한 구급처치와 응급간호(응급처치 간호), 학생들의 건강교육(보건교육) 등으로 오늘날 학교보건의 내용과 유사하다. 학교보건 간호원은 “낮동안 학생들의 보건 책임”을 지고 “학교와 가정 사이에 긴밀한 중간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보통 이하의 건강을 가진 학생들”의 건강관리와 “건강생활습관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본 지침에는 학교보건 활동별로 ‘위생실’을 운영, 관리하고, 상하수도나 식음료 등 학교 환경도 관리할 것을 제시하였다. 특히 영양 즉, 결식아동이 없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초등학교 결식아동에 대해서는 1953년 최초로 캐나다 분유 14만 파운드를 지원하였고 그 이후에는 외국원조기관에 의해 분유, 옥수수가루, 소맥분 등을 무상급식하여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30]. 1961년 양호교사(현 보건교사)가 임용되어 보건의료 인력이 학교 내에 상주하기 전까지, 촉탁 보건소 보건간호원들은 학교보건의 담당자로 기능했다.
제6편 보건교육 역시 “보건사업의 일부분”으로서 중요시되었으나 보건사업 중 “아직 초창기”에 있기 때문에 보건간호원의 많은 연구와 활동이 요구되었다. 보건간호원 1인당 300~500세대를 담당하게 하고, 해당 지역의 경제 수준, 교육, 종교, 정치, 풍습, 위생 상태 등을 파악한 후 이에 맞는 보건교육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보건교육을 실시할 장소, 방법, 교육에 이용할 “중간물”(교육매체)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였고 “모성위생, 유유아의 위생, 학령 전 아동 위생, 학교위생, 학생위생과 학부형, 주부와 가정위생, 개인위생, 공중위생, 영양과 건강, 면역과 예방주사, 만성병, 급성병, 전염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건교육이 필요함을 설명하였다. 보건교육에서는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사항”으로 청결을 강조하며, 보건간호원은 위생교육 자료를 항상 휴대하고 주민과의 접촉 시 위생과 청결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교육은 홍보물 배포, 전시회, 영화 상영, 지역 모임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미국 원조로 제작된 인쇄물과 영사기를 활용한 영화는 주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또한 학교 등에서 교사 등 핵심 인력을 대상으로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도 병행되었다[10].
제7편 ‘기록과 보고’에는 보건소에서 보건간호원이 취급하는 기록의 종류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록은 보건간호원에게 있어 “심장”과도 같다(지침 본문 130쪽)고 언급할 만큼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기록은 지역사회 각 세대들의 필수 통계를 기록한 가정기록(family record), 보건소 내원자들의 상담기록, 가정방문을 통한 방문기록, 방역적 조사기록, 기타기록 등 크게 5가지로 나누었다. 기록과 보고는 보건사업을 알리고 사회의 건강 상태를 연구하는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해방 직후부터 미국 원조 당국은 한국 보건의료 통계의 신뢰도에 많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며, 이러한 신뢰할 수 있는 통계의 부재가 효과적인 원조 사업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인식했다. 실제 전국 각지의 보건소에서 내소자에 대한 진료기록, 보건사업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보건소 사업 현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10]. 그러한 측면에서 기록과 보고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것은, 보건간호원을 통한 신뢰할 수 있는 통계의 확보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음을 의미했다.
지침의 마지막에 수록된 부록에는, 1956년 12월 13일에 제정된 보건소법(법률제406호), 보건소법시행령(대통령령제1378호), 보건소법시행세칙(보건사회부령제32호), 보건협의회 규정(보건사회부령제39호), 각도별 법정 보건소의 위치를 담았다. 부록에 따르면, 본 지침의 저술 시점에서 1959년 법정 보건소는 서울시 5, 경기 8, 충북 4, 충남 5, 전북 5, 전남 5, 경북 7, 경남 8, 강원 4, 제주 1곳으로 총 52개가 제시되었다. 이는 보건간호의 주요 활동 공간인 보건소의 법적 근거를 명시함으로써, 보건간호가 국가 보건행정 체계 내에서 제도화되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보건간호지침>의 참고문헌과 출판 이후 활용
보건간호지침을 집필하는데 이용된 참고문헌들은 지침에 제시되어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다만 이 시기 지침서 발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USOM 내 도서 보유 내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를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USOM 내 간호국 소장 도서 중 보건간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은 <A Public Health Manual (1952, Trained Nurses Association of India)>,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 (1957, The National Organization for Public Health Nursing)>, <Public Health Nursing Practice 2nd edition (1957, Ruth. B. Freeman)>, <Teaching Methods in Public Health Nursing (1952, Kathleen Leahy & Aileen Bell)>, <The Public Health Nursing Curriculum Guide (1942, The National Organization for Public Health Nursing)>로 총 5권으로 확인되었다[31]. 이 중 <Teaching Methods in Public Health Nursing (1952)>는 보건교육 사업에 관한 내용이며, <The Public Health Nursing Curriculum Guide (1942)>는 간호대학 내 보건간호 교육과정 및 학습목표에 대한 내용으로 실무지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보건행정학 교수인 간호사 Ruth Freeman이 저술한 <Public Health Nursing Practice 2nd edition (1957)>는 보건간호지침 작성 시점에서 최신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으나 보다 이론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책의 구성이 보건간호의 특성, 개인과 가정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감독 및 관리 책임, 학교 및 직업 건강 사업, 전문가 윤리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건간호지침의 구성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지침의 전체적인 구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도에서 발간된 <A Public Health Manual (1952)>과 <Manual of Public Health Nursing (1957)>은 실무 지침에 해당하는 것들로 한국의 보건간호지침 작성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 발간된 <A Public Health Manual>의 경우 현재 초판은 확인할 수 있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으며, 1968년 출판된 2판만 확보가 가능했다. 2판의 전체적인 구성은 보건간호의 개요, 가정방문 지침, 주요 기초 술기, 기록 관리, 가족계획, 모자보건, 학교보건, 가정간호, 결핵, 나병 등 주요 감염병, 사업장 간호, 보건교육으로 구성되어 보건간호지침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2판에 따르면 초판이 발간된 시점은 1959년으로, USOM의 소장도서 기록과 차이를 보인다. 정식 출판물로 발간되기 이전의 판본을 USOM에서 확보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현재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금전은 1967년 집필한 <보건간호학> 서문에서 인도의 보건간호지침을 참고문헌으로 활용하였음을 밝히기도 하였다[5]. 미국 간호자문관들은 지침의 출판 진행상황을 활동보고서에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1959년 9월에는 지침 원고가 인쇄소에 전달되었다는 내용을, 출판 이후 당해 12월에는 워크샵(workshop)을 통하여 새로 출판된 지침을 보건간호원들에게 소개하고 지침을 활용한 보건간호사업의 기획, 수행, 참여 등의 방안을 논의하였다고 보고하였다[9]. 매뉴얼 워크샵은 당시 보건사회부에 근무하였던 보건간호원 이표희, 이진조, 미국 간호자문관 로바 켈로그, 그리고 그의 한국인 보좌관이었던 원정옥, 전영자가 지방의 시도 간호사들과 함께 1959년 12월 9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대구, 광주에서 세 차례 워크샵을 진행하였다고 보고하였다[9]. 출판 직후 시행된 워크샵을 통해 일선 보건간호원에게 <보건간호지침>이 보급되었다는 점은, 이 지침이 실천적인 문서로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획되었으며 동시에 실제로 그렇게 활용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건간호 실무 지침서인 <보건간호지침> 분석을 통해 1950년대 후반 보건소 보건간호원에게 주어졌던 기능과 역할을 탐색하는 동시에 당시 한국 보건의료 상황에서 보건간호가 지닌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원조기구와 한국정부는 전국적으로 보건소를 확대하려는 계획 속에서 1956년 “보건소법”을 제정, 서울특별시 및 전국 시군에 보건소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보건소 주요 활동은 모자보건, 만성 감염병 관리, 그리고 보건위생 교육에 중점을 두었고[32], 새로운 보건이라는 실천을 매개하는 인력으로 보건간호원을 배치하여 가정방문을 통하여 주민의 건강요구를 직접 사정하고 필요한 간호서비스와 보건교육을 제공하도록 하였다[1]. 보건간호원 교육과 훈련을 위해 <보건간호지침>은 로바 켈로그 등 미국 간호자문관들과 한국 보건간호원들과 함께 전국 각지에 보건소 시찰(field trip)을 통해 보건소의 공중보건체계 및 활동을 점검하고 현장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던 내용과 보건간호 단기강습에서 사용되었던 소책자들을 토대로 집필한 것이다. 그렇게 출판된 지침은 다년간의 현장 경험과 한국적 특성을 반영한 실천적 도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지침 출판 직후 전국 주요 권역을 순회하며 보건소 간호원을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병행했다는 점은, <보건간호지침>이 단순히 정부 출판물에 그치지 않고, 현장 적용성과 실천적 활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사업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 보건 분야에서 드러난 가시적인 변화는 전염병 통제에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던 보건소 조직의 확대에 있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보건소에 인력과 예산을 적절히 투입하여 보건소가 지역사회에서 담당해야 하는 책무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고자 하였다. 보건간호는 공중보건사업에서 “보건지도의 조직적 사회활동의 말단 기능”을 담당[33]하였고, 보건소 안팎으로 다방면에 보건간호원의 실무를 두었다[1]. 구체적으로는 환자진료 시 보건상담, 기록 보고 작성 등의 보건소 내 활동과 가정방문, 집단검진, 보건교육 등의 보건소 외 활동으로 나뉘는 등 매우 다층적이었다[34]. 이와 같은 사항은 보건간호지침에서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특히 지침 전반에 걸쳐 보건소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위생과 청결의 이행, 그리고 보건지도와 교육을 통한 전염병 예방과 전파 방지를 강조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소의 전반적인 사업을 담당할 보건간호 인력이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차별적 시선, 간호원에 대한 열악한 처우, 간호원에 대한 보건의료계 내의 상대적 무관심 등의 이유로 보건소에 충분히 배치되지 못했다. 결국 보건소에 배치된 보건간호원들은 사실상 진료와 보건의 업무가 구분되지 않은 채 보건소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당면한 업무들, 특히 임상 진료 업무를 수행하는데 급급했다. 이를 두고 미국 간호자문관 중 마지막 총괄 책임자(chief nurse advisor)였던 캐슬린 로건(Kathleen Logan)은 1960년 11월과 12월 활동보고서에서 “보건간호원들은 보건소에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가정방문과 예방활동을 수행할 수 없으며 많은 보건소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기능을 위생기사, 행정사환 그리고 다른 비의료인이 대신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8].
각 도에 보건간호사업을 안정적으로 계획, 수행, 지원할 수 있는 보건간호 직제가 마련되지 못한 점 역시 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9]. USOM 간호사업국과 한국의 보건사회부는 1957년부터 1964년까지 “Nursing Education – Subproject A – Public Health Nursing (#89-540-430)”를 진행하였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보건사회부가 한국에서 적절한 보건간호사업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35]. 이를 통해 보건소 인력과 보건간호 인력훈련을 위한 물품 공급과 기술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본 글의 서두에도 밝혔듯이 지침 출판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지침 소개를 포함하여 (보건소) 클리닉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법, 조산 가방(kit) 사용법 등을 교육하는 워크샵을 진행하였다[35].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원조기구에 의해 발전시켜 놓은 보건기관과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고 보건사업을 위한 재정적 지원에 대해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로건은 활동보고서에서 “보건사회부 내 국장들의 잦은 교체, 의사 또는 행정관료들이 아무것도 변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태도”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8]. 결국 이러한 상황은 보건사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보건간호계의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미국 간호자문관들은 중앙-도-보건소에 이르는 안정적인 보건간호 직제를 조직하고 각 보건소에 적절한 보건간호 인력을 배치하고 이들에 대한 보수 등의 처우를 개선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였으나 좌절되어 1960년대 말이 되어도 “아직도 보건간호원 제도가 확립되지 못하였다”는 비판은 계속되었다[23]. 실제 중앙 정부에 의정국과 보건국에서 보건사업을 관장하고 도에는 보건 의약과가, 보건소에는 보건간호계나 과가 없이 방역 또는 보건지도계에 보건간호가 흩어져 있어 독립된 조직없이 보건간호사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23].
1966년 대한간호협회 보건간호업무분과위원회는 보건간호원을 “보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역사회 개인과 집단을 단위로 하여 건강상담, 치료와 간호를 제공하고 “가정, 크리닠, 사무실, 산업장, 병원, 학교, 보건소 등”에서의 모든 업무를 포함하며 다방면에서의 “교량 역할”을 한다고 규정하였다[36]. 보건간호원은 보건팀의 일원으로 상병자 간호, 질병 예방, 건강증진을 위한 일반적, 전문적 교육을 통해 자격을 갖춘 간호원이 될 것을 요구하였다[36]. 이렇듯 보건소 내외에서 보건간호의 쓰임은 보편적인 동시에 전문적 측면에서 모두 활용되었으나 정작 보건간호원이 요구되는 다양한 영역과 사업 속에서 보건간호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교착상태(stalemate situation)’[9]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에 대해 보건간호계는 기초 간호교육 과정에서 공중보건학을 강화할 것, 보건간호 전공자가 보건간호 교육을 담당할 것, 보건간호를 전공한 간호원들을 타 부서로 이동시키지 말 것, 보건소 조직면에서 일원화된 행정조직 체계를 갖출 것 등 매우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시하였으나[36] 현실 속에서 크게 진전된 것은 없었다. 대한간호협회에서 1954년 출판된 <간호사(看護史)> 14장 “대한민국의 간호발전”에서 이금전은 보건간호를 포함한 간호계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몰이해와 국가예산부족으로” 보건간호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37].
본 지침에서도 확인된 바, 보건간호 영역은 모성보건지도, 영유아 보건지도, 결핵사업, 전염병 간호, 학교보건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였으나 이를 제한된 적은 수의 인력으로 수행해야 했다. 결국 이를 모두 수행하기 위하여 보건소 내에서는 결핵관리와 같이 전문적인 보건간호 업무를(즉 specialized), 보건소 외에서는 “generalized된 보건사업을 담당”하여 가정방문 시 시간을 절약하고 부족한 인력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즉 한국적 상황에 맞춰 ‘generalized PHN’과 ‘specialized PHN’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절충안을 내기에 이르렀다[38]. 마찬가지로 이 지침에서 다른 국외의 메뉴얼에서는 찾기 어려운 보건소 내 진료실 업무가 추가되고, 반대로 산업보건과 같은 영역이 누락된 것은 이러한 절충과 보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 전반에 만연해 있었던 한국 정부의 ‘보건’ 개념의 중요성에 대한 미온적 태도와 저조한 예산 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예방활동과 보건사업은 더딘 진전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보건소 보건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보건사회부 내 보건간호 지도자들과 미국 간호자문관들은 전국의 보건소 현장에서 활동하던 보건간호원들을 위한 실무지침의 출판을 통해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보건간호 실무자를 교육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959년에 출판된 <보건간호지침>은 당시 한국사회의 보건간호를 포함하여 공중보건을 주도하였던 미국 간호자문관과 한국의 보건간호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출판되었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182개소의 보건소를 확충한다는 국가 사업에 당면하여, 빠르게 증가할 보건간호원들이 신속하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침서의 발간은 필수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에도 이렇다 할 보건간호 실무지침이 부재하던 상황 하에서 <보건간호지침>의 편찬은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보건소 조직에서 주요 실무를 담당하는 보건간호원들로 하여금 보건간호의 지식 및 실무에 필요한 기술을 실질적으로 제공하여 보건소 사업의 성과를 증대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국외의 문헌들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 보건소 및 보건망의 현실에 맞추어 이를 재해석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한 ‘한국식 보건간호’의 한 흐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의 보건간호가 그 한계 속에서 진료와 보건이 구분되지 않은 상황을 규범적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여 실무적으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서술해 낸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지침 자체가 그 당시 한국의 보건간호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건소 보건간호원의 역할을 정립하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사명과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발간된 <보건간호지침>이 이후 일선 보건소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또한 이후 이 지침이 한국 보건간호의 개념과 실천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후속 연구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Conflict of interest

The authors declared no conflict of interest.

Funding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the Community Health Nursing Historical Research Fund of 2023 funded by the Korean Academy of Community Health Nursing.

Authors’ contributions

Junho Jung contributed to conceptualization, data curation, writing - original draft, review & editing, and resources. Kyunghee Yi contributed to conceptualization, funding acquisition, data curation, and writing - original draft, review & editing.

Data availability

Please contact the corresponding author for data availability.

Acknowledgements

None.

Figure 1.
Your public health center guide (excerpt), April 1958.
Source: Office of the Deputy Director for Operations. "Your Public Health Center Guide (Excerpt)." 8. Nursing. RG 469,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Digital Archives. Document File AUS014_81_00C0005. pp. 26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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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A public health nurse conducting a home visit in 1959
Source: Office of the Deputy Director for Operations. Public Health in Korea. RG 469,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Digital Archives. Document File AUS014_35_00C0387.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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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 Data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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